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뭐라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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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뭐라도 해야죠

by onfriday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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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나를 지키면서 산다. 한동안은 나를 볶아쳤고 그 기간보다 더 오랫동안 가라앉아버렸다. 내가 가라앉아있는 시간동안 누가 내게 물었다.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고. 나는 내가 가장 아까워서 아끼기 시작했는데 그게 너무 오래돼버렸다. 자기연민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나를 되살리기 위해 하는 일, 최소한으로 사람답다고 느끼게 하는 일이다.
몇 년 전에는 이렇게 살지도 않았다. 되는 대로 일어났고 살 만큼만 먹었고 읽는 것도 그냥 했다. 규칙의 시작은 밥이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것. 전에는 2.5끼 정도를 먹었는데 그 중 두 끼니의 밥이 일인분이 채 안되었다. 내 우울이 가장 빠르게 오는 곳은 입맛이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알약 한 알에 영양소를 채워주는 제품은 왜 상용화되지 않는지 아쉬워했다. 아무 맛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때는 그냥 입맛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평소에도 많이 먹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기본욕구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잠도 많이 잤다. 졸리면 자고 그렇게 자다가 깨있는 시간에는 조금 먹고 다시 잤다. 먹지 않으니 기운이 없어서 더 잤다. 그게 몇 년이고 그렇게 지내다 살이 빠졌다. 핸드폰을 붙들고 누워서 어느 연예인이 너무 말라서 팬들의 걱정을 산다는 기사를 봤다. 사진 속 연예인은 내가 보기에도 심하게 말랐는데 기사에 나온 숫자들이 나의 것과 같았다. 보통은 이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무기력은 무기력을 부른다. 지난번에 말한 포기근육처럼 붙고 붙어서 불어나 나를 덮는다. 그러나 나를 덮어야 하는 것은 살이었다.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갈비뼈가 보이면 안 되는 거다. 밥을 먹기로 했다. 하루 세 끼만 챙겨보기로. 잠을 자든, 밤에 나쁜 생각을 하든지 일단 밥을 먹기로 결정하고 보니 내겐 밥을 챙겨먹을 시간도 부족했다. 오래 자는 만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상 시간을 정했다. 최소한 10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밥 먹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누워만 있다가 운동을 시작했다. 건강하게 살찌우려면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어디선가 봤다. 벌크업이든 살크업이든 누워서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집에 있던 실내 사이클을 돌렸다. 책을 읽었다. 그게 다시 몇 년이다.
몸무게는 늘고 있고 마음은 편해졌다. 운동량이 늘었고 책도 여전히 읽고 있고 혼자 쓰는 글이어도 글을 쓴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크게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어서 그냥 하루하루가 평온하게 흘러가는 것에 만족했다. 때때로 찾아오는 깊은 밤에도 다음날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고 운동갈 생각에 잠 들려고 노력하기도 하니까 이정도면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취미를 잃었다. 팬데믹 이후로 시들했는데 아예 잃어버렸다. 좋아해보려고 노력할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편한 게 아니라 아무런 의욕이 없는 것이었고 나를 들여다 볼 의지도 없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드라마 속 야망캐를 보면서 동경했는데 지금은 보는 것도 벅차다. 그래서 다른 태도를 장착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를 좀 바꾸어 ‘하고 싶은 게 없지만 어쩌겠습니까, 뭐라도 해야죠.’ 식물에 물주기, 새로운 메뉴 찾기, 다른 산책로 탐방하기. ‘뭐라도 해보면’의 의욕을 되찾으려고 한다. 작은 무엇들을 찾아야 한다. 내가 나를 볶아치지 않되 작은 성취를 쌓아올리는 이유다. 이제는 나를 아끼기보다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한다.

https://youtu.be/bOwzED-zp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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